임신과 중절
기억에 남는 것은,
색즉시공에서 하지원이 맡은 역할이다.
학교 킹카와 사귀게 되었고, 관계를 가진 후 임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그에게 알리자, 그는 카드를 주며 병원에 가라고 한다. 마치 임신을 도구처럼 여기는 여느 여자들 대하 듯. 그녀는 그런 행동에 질려하며, 그에게 비난을 한다. 사실상 그들의 관계는 그걸로 끝이다. 그리고 큰 대회를 앞두고 그녀는 중절 수술을 받는다. 에어로빅 선수였던 그녀는 다 회복되지 못한 채, 국가 대표를 선발하는 대회에 출전해 결국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이런 식의 전개는 익숙하다. 임신과 중절이 한 여자에게 견뎌내야 할 고난과 역경으로 묘사되는 것, 언제부터 그렇게 가볍게 표현되었을까. 정말 가벼운 것일까. 갑자기 찾아온 불행으로 단순하게 치부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 임신이라는 것이 불행일까.
우리네 인생에서 계획하지 못한 일들이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다. 물론 그것들이 무조건 옳다던가, 불행하기만 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에 대처할 수 있도록 평소에 준비하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원치 않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하며, 혹시 모를 상황을 고려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삶 어떤 일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임신을 계획하지 않았으면, 그에 따른 피임을 확실히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계획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피임을 하지 못했고, 계획하지 않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을 이해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당혹스럽고 좌절스럽고 막막한 일이라는 걸 안다.
어린 나이에 일찍 결혼한 우리 엄마는, 항상 늦게 결혼하라고 말했다.
호기심에 관계를 가질 수 있지만, 임신이라는 것은 가볍지 않기 때문에, 원치 않는다면 피임을 꼭 하라고 일러주기도 했다. 그 말을 내 나이 열여섯에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어렸을 적에는 관계라는 것이 지금보다 더 음지의 이야기였고, 학생들의 교제도 건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였다. 그렇기에 피임 즉, 콘돔은 써본 적이 없다. 사실, 안일했다. 임신이라는 것이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스무살이 되었을 때, 드문 드문 연락하던 중학교 친구가 연락이 왔다. 자기가 결혼하면 와줄 거냐고. 당연히 갈 거라고 하면서, 망설이는 친구에게 결혼하니? 라고 물었다. 작게 긍정의 대답을 하길래, 임신했니?라고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그 친구 나이 열아홉이었다. 축하한다고, 쉽지 않을 결정 잘했다고, 다시 연락 달라고 했다.
친구가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는 중절 수술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미성년이었던 친구는, 부모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했고, 긴 고민 끝에 부모에게 말하니 그들도 중절 수술할 것을 권했고 같이 병원에 갔다고 한다. 마음의 준비가 끝난 친구에게 의사는 초음파로 아기의 심장과,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려줬고, 그로 인해 친구는 결정을 번복했고, 부모가 말려도 아기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엄마도 아는 친구였기에 그 사실을 엄마에게 알렸다.
우리 엄마는 그런 일이 있다면, 내가 그런 말을 한다면, 당장 병원에 데려갈 거라고 말했다. 그때는 엄마의 그런 단호한 결정이 정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엄마에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병원에 갈 거라고 했다. 진심은 아니었던 말이, 내뱉으니 그 결정이 옳다고 느껴졌고, 그렇게 할 거라 다짐했다.
친구가 해준 이야기를 나중에 다시 떠올렸을 때, 그게 결코 옳기만 한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가 그 아이를 지우고자 결정했던 것이 떠오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로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지고 잘한 일이라고 생각할까. 사실 그건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나의 그 결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언젠가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만약 내가 준비되어있지 않고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라면, 나는 그렇게 결정할 것이다. 나는 내 신념이 옳다고 믿으며,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지만, 나 스스로는 그것을 지키고 살아가고자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