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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시선/새벽에 쓰는 일기

한적한 토요일의 일기


산책하면서 본 풍경

밖으로 나와 걸으니, 오래 보지 못한 것들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노랑나비, 호랑나비도 보았다.
말라 비틀어져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은 밟혀서 부스러져 마치 한 겨울의 눈송이처럼, 봄날의 벚꽃잎처럼 내가 걷는 길을 꾸며냈다.
도토리도 보았는데, 모자는 가지에 매달린 채 열매만 떨어져 몇 개 취하고 싶었지만 다른 동물의 식량이라고 생각하니 예쁜 쓰레기로 다룰 수 없어 손에 쥔 도토리 한 알을 다시 땅에 내려 놓았다. 도토리가 무더기로 쌓여있는 곳을 보고 의미없나 싶었지만.



한 시간 전 쯤에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걸어가자니 기분이 묘했다. 돌아가는 느낌, 내가 돌아가야할 곳이 있구나, 같은 당연한 깨달음을 느끼고. 보는 각도가 달라서인지 새롭게 보이는 풍경도 있지만 대체로 익숙한 장면들이 흐릿한 기억을 걸음마다 끼운다.



‘강변 마라톤 26등’이 적힌 티를 입고 달리는 아저씨도, 연습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자전거를 탄 야구부 아이들도. 다들 활기찬 주말을 보내고 있구나 싶다. 무기력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한 가지 일깨워주는 것 같다. 걸으면서 글을 적을 소재도, 시야도,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도 넓어지는 것 같은 느낌에 자주 나와야지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한 시간을 걸으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 그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왼발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잡힌 게 느껴지면서 걷는 게 괴롭기만 해도 끝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만 생각했다. 내가 가는 길에는 끝이 있으니, 괴롭고 힘들어도 끝이 있는 길을 걷고 있으니 끝까지만 걸으면 된다는 생각만으로 걸었다.
끝은 있었고, 잠시 눈을 돌릴 곳도 숨을 가다듬을 곳도 있었다.


운동을 하려고 마음을 먹은 건, 떨어지는 체력도 계속 불어나는 살도 있지만, 1년 반 뒤에 떠나기로 했던 친구들과의 도보 여행을 위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한 달을 넘는 기간 동안 오로지 도보로만 여행하기로 했으니 그에 맞게 체력을 길러야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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